나의 이야기 66

BTS 중국

BTS가 어쨌다고?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양국(our two nations, 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BTS가 2020 밴 플리트상(2020 Van Fleet Award) 수상식에서 밝힌 소감의 일부다. 중국 누리꾼들이 뒤늦게 발끈했다. 중국의 반응은 즉각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BTS는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기렸지만, 일부 중국인은 (BTS 발언에서) 모욕을 느꼈다... 그것(BTS 수상 소감)은 악의 없는 말 같았다. 하지만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지체 없이 (BTS를) 공격하는 글을 올렸다.” - 뉴욕타임스(NYT) “이번 논란은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인 중국에서 대형 업체들 앞에 정치적 지뢰가 깔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나의 이야기 2020.11.22

일본의 근대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조선은 차라리 외국으로부터 현대적 행정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조선 국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이것이 조선인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 ‘이코노미스트’, 1909년 10월 30일 일본의 ‘통치’에 대해 외국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들이 쓰는 기고문이나 책에는 한결 같이 조선의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했다. 일본은 조선을 근대화시킨 ‘은인의 나라’로 여겨졌다. 증거도 있었다. 근대 의료시설, 그대 학교 등이 일본의 힘으로 지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은 사실적 데이터나 관찰의 결과가 아니었다. 대부분 일본의 부단한 선전 덕분이었다. 일본은 서구 열강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고 싶었고, 부단한 선전으로 그러..

나의 이야기 2020.11.17

반달리즘

이런 파괴 정치에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78) 전 뉴욕시장의 선거사무소가 상대 후보 지지자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선거사무소 유리창 4개에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 ‘공화당원’, ‘올리가르히’(신흥재벌)라는 낙서를 새겼다. 지난해 10월2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시티 도심에서 폭력 시위를 막기 위해 서 있는 인간 평화의 띠가 만들어졌다. 교대생 43명 실종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자들이 오래된 건물이나 공공시설을 잇따라 공격하고 파괴한 때문이었다. 평화의 띠에 참가한 이들은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두 경우 모두 ‘반달리즘’이라고 불린다. 사전에 따르면 반달리즘은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넓게는 낙서나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공공시..

나의 이야기 2020.11.12

족보 찾기

권씨 족보에 권씨는 10% 양반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당연히 특권층이었고, 고려 후기로 가면서 이 특권을 획득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조상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열된 호적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호적에 변화가 찾아왔다. 조선 건국 직후까지만 해도 그대로 가다가 이후로 양반 부부 각각의 사조(四祖ㆍ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까지만 기록하도록 했다. 이에 ‘뼈대’를 보여주고 싶었던 양반들은 불만을 가졌다. 15세기 후반, 민간 족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안동권씨성화보였다. 이 속에는 아버지 혈통과 딸들(사위)까지 포함됐다. 범위가 방대해서 심지어 권씨족보였지만, 족보에 담긴 ‘권씨’ 성 남자는 10%에 불과했다. 성씨가 수백 개에 이르렀다.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져 내려오는..

나의 이야기 2020.10.31

병자호란 포로

병자호란 포로 그들은 왜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나 피해갈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난하든 부하든, 권력이 있든 권력이 없든. 병자호란에서는 포로들이 그런 처지였다. 가난하든 부하든, 권력자든 아니든 패배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유 하나는 같았다. 무작위로 끌려갔다. 이들은 심양의 노예시장에서 매매됐다. 얼마 후 청나라 왕은 조선인들의 속환을 허락했다. 심양이 몇 십 만이나 되는 사람을 한꺼번에 수용할 만큼 크지 못했다. 조선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얻었으나 이때 문제가 생겼다. 조정에서 나서기 전에 이미 속환을 해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사대부 혈통을 가진 이들이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은 돈을 내고 데려가 버리는 바람에 포로들의 몸값이 올라버렸다. 당시 시골 하루 품삯이 5냥, 사대부 중에는..

나의 이야기 2020.10.26

노동법 근로시간

노동법 근로시간 국민의 이름으로 “노동시간을 법으로 정하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게 처음 나온 주장이다. 당시 영국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12~16시간씩 일했다. 미국에서는 뉴욕에서는 제과점 직원의 근무시간을 법으로 제정했다. 이른바 제과점법이었다. 법에 의하면 제과점 직원에게 ‘주당 60시간,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를 시키면 안 됐다. 계기는 1894년 뉴욕 주에서 유대인 제과점 노동자가 사망한 것이었다. 8개월 후에 제과점법이 만들어졌다. 법이 제정되자 반응이 갈렸다. 대규모 업체는 비교적 수긍했다. 설비가 현대화되었고 교대근무가 정착돼 노동시간 제한이 큰 장애가 안 됐다. 문제는 영세 제과점이었다. 그들은 “대형 제과점에 모두 죽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1902년 사건이 벌어졌다. 뉴욕 주의 영세 ..

나의 이야기 2020.10.21

태국 민주화 시위

태국 민주화 시위 이런 불공평한 나라가 과연 오래갈 것 같습니까?” 태국 국민들이 두 달 넘게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과 시민들이 연합한 ‘민주화 시위’다. 시위의 도화선이 된 사건은 이른바 ‘레드불 스캔들’이다. 레드불 창업주 찰레오유위티야의 손자인 오라윳유위티야(35)가 페라리를 타고 시속 177km로 과속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차로 치어 숨지게 했다. 과속, 음주 운전, 코카인 복용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보석금 50만밧(약 1900만원)을 내고 풀려난 데다 지난달 태국 검찰이 오라윳에게 유리한 증언을 들어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서 비난 여론이 다시 들끓었다. 진상조사 결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변호사, 검사 등이 오라윳의 기소를 막으려고 공모했다는 ..

나의 이야기 2020.10.04

이산가족 상봉

이산가족 상봉 축제 1983년 그리고 ‘이산가족찾기’. 당시 한국에서 이산가족찾기를 취재했던 ABC 방송국의 리트키 기자는 이 ‘국민적 이벤트’를 이렇게 평가했다. ‘1979년 부산에서 대학생들이 시위에 나섰고, 박정희 대통령 사후에는 광주에서 큰일이 있었다. 3년 동안 한국인들은 화가 나 있었고 또 슬픈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이산가족 상봉으로 전 국민이 희망을 갖게 되고 단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전 국민이 화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말했다. ‘KBS는 이런 모든 아픔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갖고 있던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가능했다고 본다. 이산가족상봉을 통해 이러한 아픔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치도 권력도 이산가족찾기 앞에서는 ..

나의 이야기 2020.08.30

영남 만인소 사건

영남 만인소 사건 구한말 의병의 뿌리를 찾아서 1881년, ‘척사만인소’운동이 일어났다. 영남지역의 선비들이 중심이었다. 이 척사운동은 언로 운동에서 무력부분으로 번졌다. 의병을 조직하고 조직적으로 무력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척사만인소’의 시작은 영남이었으나 의병 운동은 다른 지역, 다양한 학파에서도 뛰어들었다. 계몽운동과 공자교 운동, 유림단 사건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들의 출발점에는 1792년(정조 16)에 첫선을 보인 ‘만인소’가 있었다. 만인소의 바탕은 ‘공론에 의한 정치’ 추구였다. 조선시대는 왕이 다양한 의견을 들은 후 정책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고, 관료가 아닌 유생들에게도 국가 정책에 대해 말할 자격을 부였다. 그들은 “인심이 동의하는 바를 공론이라 하..

나의 이야기 2020.07.25

요리의 비결

요리의 비결 요리에서 발견한 기술의 역사 새로운 기술이 발견되고, 이것이 대중화에 성공하면 기술은 새로운 국면으로 올라서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원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다수가 혜택을 입지 못하면 대박이 나기 힘들다. 기술에 적응되면 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강한 기업’들이 탄생한다. 기술의 발견 채소는 원래 풀이었다. 인류가 풀을 먹을 수 있게 된 데는 2가지 기술이 적용됐다. 작물화였다. 감자, 콩, 과일 등은 야생 상태로 두면 새나 먹을 만큼 작아진다. 인간은 이를 먹을만하게 변형시켰다. 또 하나 해결해야 하는 것은 독소다. 풀은 대부분 독을 가지고 있다. 풀에는 왜 독이 있을까. 살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강낭콩에는 렉틴으로 곤충과 진균의..

나의 이야기 2020.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