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파괴
정치에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78) 전 뉴욕시장의 선거사무소가 상대 후보 지지자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선거사무소 유리창 4개에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 ‘공화당원’, ‘올리가르히’(신흥재벌)라는 낙서를 새겼다.
지난해 10월2일 멕시코에서는 멕시코시티 도심에서 폭력 시위를 막기 위해 서 있는 인간 평화의 띠가 만들어졌다. 교대생 43명 실종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자들이 오래된 건물이나 공공시설을 잇따라 공격하고 파괴한 때문이었다. 평화의 띠에 참가한 이들은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두 경우 모두 ‘반달리즘’이라고 불린다. 사전에 따르면 반달리즘은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넓게는 낙서나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공공시설의 외관이나 자연 경관 등을 훼손하는 행위도 포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정치적 기류가 바뀔 때 ‘속이 시원하게’ 부수는 행위가 나온다. 정치적 기류가 바뀐 후에 뒤따르는 ‘심판’이다. 구호는 사그라들고 기념비나 기념비적인 조형물 따위는 철거되거나 슬그머니 뒷마당에 치워진다.
‘반달리즘’이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 시기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파괴 운동을 뜻하는 말이었다. 1794년 ‘혁명’에 나선 이들이 프랑스에서 종교를 몰아내려는 시도를 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노트르담 성당의 왕의 조각성에서 머리를 부수었다. 일부 예배당은 곡물창고나 저장소가 되었다.
‘혁명’을 저지하는 세력이 있었다. ‘혁명 지도부’였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파괴는 용인하면서도 두 가지 예외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라틴어가 새겨진 유물. 두 번째는 평등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 유물들.
파괴론자들에도 불구하고 혁명세력은 1793년에 왕과 성직자, 귀족들이 빠져나간 뒤 남은 물건을 모아 루브르궁에 국립박물관을 설립했다. 세계 최초였다. 반달리즘과 유물 보관이 함께 일어났다.
기념물과 유물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지금도 여전하다. 오래된 문화재하면 모를까, 탄력받은(?)이들과 차분하게 가자는 측 모두 너무도 설득력이 있어서 좀체 방향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