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일본 경제침략

짱구는옷말려요 2020. 1. 13. 19:03

일본 경제침략


그녀가 깜짝 놀란 이유




“어머니는 심한 문화 쇼크를 받은 것 같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온 여자의 자녀가 쓴 책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책 제목은 ‘어머니의 경성, 나의 서울’. 일본에서 받은 문화 충격이란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귀국할 때까지도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상륙한 항구에서 짐을 짊어지고 일하는 사람이나,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 모두 일본인이었던 것에 우선 놀랐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가난했다. 일본인들은 원래부터 부유하고 조선인은 애당초 자본이 없었는다는 주장도 있다. 정말 그럴까? 사실을 보면 일본에서 거금을 들고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은 없었다. 빈털터리로 들어와 모든 일본인들이 경제적 성공을 일구었다. ‘한 명’도 없고 ‘모두’ 성공했다. 극단적 표현이 꼭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연구자들 중에는 자본주의 초기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는 이도 있다. 이는 일제의 악행이 정치적인 것일 뿐 경제는 공평무사하게 처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 경제가 잘 나갔다면 그런 주장도 타당할 것이나, 일본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1890년 군비 확충과 증세 사이에서 내분이 있었다. 청일전쟁에서 얻은 배상금은 대부분 군비에 쏟아부었다. 러일전쟁에 소요된 전쟁비용은 외채로 조달했다. 1895~1897년과 1910~1912년을 비교했을 때 한 집당 세금을 4배나 더 냈다. 세금을 못 내서 재산을 몽땅 몰수당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굴러들어온’ 식민지 조선은 당연히 수탈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그들의 말대로) 조선의 근대화를 이끈 시혜자가 아니라 굶주린 늑대나 다름없었다.






여러 경제 제도에서 조선인은 차별받았다. 대출 금리만 놓고 봐도 일본인은 5%, 조선인은 10%였다. 그러면 7% 사채업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은행에서 5%로 빌려서 조선인에게 7%를 받고 빌려주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일본인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었다.



1928년 조선총독부터 우편저금액 통계를 냈다. 일본인 47만명의 저금액은 2,648만엔, 조선인 1,866여명의 저금액은 430만엔이었다. 1인당 저금액으로 치면 일본인이 245배나 많았다.






이 외에도 많은 부분(실질 임금, 경제 시스템, 경제 기획)에서 조선은 차별을 받았고 그 결과 극단적 가난과 극단적 부라는 기이한 경제현상으로 나타났다. 육체 노동을 하는 일본인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 이보다 더 놀라운 경제적 차별의 결과가 있을까?



참고>

도리우미 유타카,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지식산업사, 2019년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중장부  (0) 2020.01.16
조선의 경제  (0) 2020.01.14
세종 한글 사랑  (0) 2020.01.07
이순신장군 업적  (0) 2020.01.06
사이비 종교  (0) 2019.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