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한글 사랑
상상도 못 할 결과가 나타날 것
한자를 접하기 쉽지 않다. 역사책이나 옛날 책이 아니면 한글이 온전히 지면을 점령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모르지만, 젊은 친구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오히려 영어가 더 익숙할는지 모른다.
1895년에 나온 ‘서유견문’의 서문을 읽고 있으면 세상이 참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유길준은 서문에서 국한문체로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썼다.
‘첫째,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되도록 글을 읽기 쉽게 써야 했다. 둘째, 한문으로는 나의 지식과 학문을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워서였다. 셋째, 세계 여러 나라의 글이 그 나라의 말과 맞으므로 나도 우리말과 맞는 우리글로 썼다. 여기에 한문을 그냥 쓴 것은 옛날부터 경서를 언해할 때의 예를 좇은 것이다. 사실 한자를 버리고 순전한 우리글로 쓰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이는 내가 한문을 국문으로 바꾸어 쓸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오히려 부끄럽다.’
유길준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글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순전한 우리글로 쓰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부끄럽게 여겼다. 지금 한글 세대에게 보여주면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생각이다.
당시는 달랐다. 보수적인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개화사상을 지지하던 그의 친구들도 국문과 한문을 섞어 쓰는 것을 두고 문장가의 궤도에서 벗어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유길준은 이를 반박했다.
“국문은 세종대왕께서 창조하신 글자요, 한자는 중국과 함께 쓰는 글자지만, 국문처럼 읽고 쓰기 쉬운 글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네.”
급변하는 세상에 한글만큼 빠르고 쉽게 정보를 전달한 수단은 없다. 이 역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유길준의 머릿속에서 가장 중요한 독자는 대중이었다.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을 택하는 것, 르네상스를 일으킨 동력과도 일치한다. 한글 자체가 혁명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가 외국과 국교를 맺었으니 모든 백성이 저들의 형편을 알아야 하네. 그러려면 백성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국문으로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어찌 내가 일부 계층의 전유물인 한자로 책을 써야겠는가.”
유길준의 국한문체는 한자에 토를 다는 정도였다. 그 정도로 용납하지 못하는 ‘한문 숭상 집단’이 조선의 식자층이었다.
독립신문도 도마에 올랐다. 신문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
‘국문이 한문보다 얼마나 나은가 하면 첫째, 배우기 쉬우니 좋고 둘째 조선 글이니 상하 귀천이 모두 알아보기 쉽다. 그동안 사람들이 한문을 늘 써 버릇하고 국문은 외면한 탓에 국민이 국문으로 쓴 글을 도리어 알아보지 못하고 한문만 알아보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사람들은 순한글 신문을 접하고 국한문체가 차리라 낫다는 반응이었다. 서재필도 대중의 편에 서서 항변했다. 독립신문 26호에서 사설을 통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국문은 조선 글이요,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것으로 한문보다 백배 낫고 편리하다. 우리나라에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써야지 왜 남의 나라 것을 쓰면서 동포를 짐승 취급하는가.’
바깥에서 온 이들도 조선인들의 한문 숭상을 기이하게 여겼다. 1885년 미국 북감리회에서 파견된 아펜젤러와 언드우드는 영문으로 만든 선교 잡지에 한글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도착해보니 교육받은 사람들은 대개 한자를 쓰고, 대다수 여인들은 문맹이었다. 조선에는 언문이라는 쉬운 글자가 있는데,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한글과 한문을, 영어와 라틴어에 비교했다.
‘모든 책은 한자로 쓰였는데, 이는 영국이나 미국에서 라틴어로 출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적을 조선의 글로 출판하여 쉽게 읽을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문맹도 퇴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임을 깨달았다.’
문맹의 퇴치는 말 그대로 글자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고, 르네상스적 의미에서의 대중의 각성을 의미한다. 바깥에서 온 사람들은 한글을 통해 이 두 가지가 너무도 손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단박에 깨달았다.
‘조선어로 출판하면 우리 선교 사업에 상상도 못 할 결과를 얻으리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게 하면 글을 모르던 남녀노소가 머지않아 글을 깨우쳐서 읽고 쓸 것이다.’
그들이 말한 ‘상상도 못 할 결과’란 지금의 경제성장이나 BTS, ‘기생충’ 같은 대중문화의 성과까지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사족을 달자면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 J.S. 게일은 1909년 펴낸 ‘전환기의 조선’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한 달만 한글을 공부하면 성경을 읽을 수 있다고 놀라워했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회에서는 선교 정책에서 상류층보다 근로계급을 우선 공략하기로 했고 교육에 치중했다. 모든 문서에 순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들은 근로계급이 한글을 배우고 공부하면 그것이 조선의 힘이 될 것이라는 걸 진작에 깨달았다. 한글이 일으킨 자각이 아니었을까.
참고>
이상각,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 유리창,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