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
그들이 모두 ‘진짜’라면 왜?
사이비. 그럴듯하지만 아닌 것. 가짜보다 위험하다.
정약용의 시대에는 풍수와 관련한 사이비가 많았다. 묘자리와 관련한 송가가 빈발했던 시기였다.
묘자리 잡기는 혹하기 쉬운 요소가 너무 많았다. 요지는 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인데, 그 시대의 윤리적 핵심이 그 안에 스며있다. 게다가 제법 그럴싸한 논리들이 많아서 도무지 뿌리치기 힘들었다.
정약용이 이와 관련해 책을 썼다. ‘풍수집의’. 효(孝)라는 탈을 뒤집어 ! 쓴 묘자리 풍수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책에서 효성스러운 마음 외에는 부질없는 사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가 거론한 인물 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이는 정이천(程伊川, 1033~1107)이다. 그의 ‘장론(葬論)’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의 조부가 죽자 사람들이 묘 자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했다. 그는 그 말을 다 듣지 않고 다섯 가지만 피하면 된다고 봤다. 나중에 무덤 터가 길거리나 성곽, 도랑, 밭이 되거나 높은 사람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 즉 오환(五患)이었다.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로 묘자리를 따지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험 삼아 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좋지 않은 자리라면 시험 삼아 여기다 묘를 써보는 것도 괜찮지 않냐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정이천은 먼 훗날 그 표정에 대한 답을 책에 썼다.
‘우리 집안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몇 배로 불어났다.’
요즘은 묘자리를 그다지 따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이비’가 없어진 건 아니다. 보편저인 윤리나 상식을 뒤집어쓰고 ‘화려한 언변’과 이론으로 무장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무리는 지금도 많다.
묘자리 전문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를 모두 아우르는 듯하면서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다. 이를테면, 정치인은 언제나 ‘국민’을 챙기고, 기업인들은 오로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만 두 분야만큼 국민들이 걱정이 쌓이는 데가 없다. 그들이 모두 ‘진짜’라면, 그들의 걱정과 공언이 모두 사실이라면, 국민들이 왜 이토록 괴롭단 말인가. 우리 국민 모두가 묘자리를 잘못 써서 그런가?
참고>
정약용, 박종천 옮김, <다산 정약용의 풍수집의>, 사람의무늬, 2015, 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