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갈릴레이

짱구는옷말려요 2019. 12. 8. 16:12

갈릴레이


‘렌즈 기술자’의 인생 역전



“이거 물건이네!”






자식 셋에 먹여 살려야 할 동생도 여럿이었다. 교수라는 직함을 따놓았어도 종신직이 아니라 급여도 넉넉지 못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도 없었다. 그때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다. 네덜란드의 한 상인이 시력교정용 기계를 발명했다는 거였다. 그 원리를 들어본 그는 잘 고치면 뭔가 훌륭한 작품이 나올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는 기계 제작도 잘했다. 상인의 기계를 가져와 뚝딱, 뚝딱 개조를 시작했다. 그는 렌즈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볼록렌즈를 약화시키고 오목렌지를 강화했다. 거의 매일 렌즈를 깎으며 실험을 거친 끝에 최적의 두께를 찾아냈다.



“성능을 확인하고 싶소.”



베네치아공화국 정부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나이든 원로원 의원들을 대동하고 100미터 높이의 파도바 상당의 종탑에 올랐다. 거기서 원로원 어르신들은 먼 풍경이 눈앞에 달려드는 마법 같은 경험을 했다. 인류 최초의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요즘의 우주여행이나 다름없는 체험이었다.






‘렌즈 기술자’는 그날 바로 종신 교수가 됐다. 월급도 2배로 되었다. 먹고 사는 일이 안정된 그는 본업에 매진했다. 그는 하늘을 관찰하는 것이 직업이나 다름없었다.



손기술 뛰어난 이 종신 교수는 밤하늘을 관찰해 달의 분화구, 태양의 흑점,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 등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그 시대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뒤집기로 한 거였다. (사실 코페르니쿠스가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위험한 일이었다. 그의 선배가 이미 시도한 적이 있었다.



“무수한 태양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행성들이 자신들의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그의 이름은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 그는 카톨릭 교회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다.






우리의 종신 교수님도 ‘비밀’을 발설하지 말 것을 위협받았지만, 재판정을 나오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 갈릴레이(1564~1642)



참고>

정기문,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푸른역사,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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