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물류시스템 관리

짱구는옷말려요 2021. 1. 14. 19:21

 

 

중소 기업의 해외진출이 쉬워진 이유

 

희망봉을 처음 넘었던 사람은 포르투갈인들이었다. 이후 네덜란드가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후 영국이 세례 물류를 제패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순으로 힘의 축이 움직인 셈인데, 이 세 나라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포르투갈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처럼 국가의 지원을 받는 거대한 회사를 소유하지 못했다. 애당초 국가와 함께 움직이기보다 사적인 세력인 성격이 강했던 포르투갈인들이었다. 그들은 나라가 영토를 빼앗긴 뒤에도 장사를 계속했다. 19세기 초까지 페르시아만에서 마카오에 이르는 지역은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였다. 이들은 신세계와 아시아를 자유롭게 오가며 무역 활동을 했으나 강렬한 존재감은 없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치열하게 경쟁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가 앞섰다. 네덜란드는 발트해의 곡물 운동과 해운 자재 운송을 도맡아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에 등극했고, 영국과의 경쟁에서도 고급 향신료를 독점해 이익을 극대화했다.

 

 

 


경제환경은 변하기 마련, 향신료 가격이 떨어졌다. 애당초 무역 물품을 다변화했던 영국은 기회를 잡았다. 그 결과 17세기까지 네덜란드인이 동남아시아의 향신료를 실어날랐고, 18세기에는 영국이 인도산 면을 유럽으로 들여왔다.

 


운송비가 적게 드는 선박을 제작한 것도 중요한 요소였다. 이들은 네덜란드가 쥐고 있는 유럽 물류시스템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해운업 우선 정책을 펼친 것도 주효했다. 1651년 몇 차례에 걸려 항해법을 제정했는데, 법에 따라 영국이 수입하는 물품은 모두 영국 선박이 실어나르게 했다.

 

 

 


지금도 물류 현황을 바뀌고 있다. 도매와 소매로 연결되는 기존의 유통망은 거의 무너졌고 온라인의 몫이 커졌다. 심지어 10여년 전 컴퓨터로 주문하는 트렌드도 모바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상품 소개 화면 등을 온라인에 최적화한 회사는 살아남았고, 컴퓨터의 ‘대형’ 화면에만 올인했던 회사는 쇠락했다. 물품도 다양해져서 심지어 철강제품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시대가 됐다.

 

 

 


해외 직구도 활황이다. 과거에는 박람회 등을 통해 바이어들에게 눈도장을 찍는 시스템이었으나 지금은 온라인의 몫이 커지고 있다. 과거 시스템이 한꺼번에 소멸하지는 않겠지만 바이어를 거치지 않고 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나 기업이 소비자를 직접 만날 기회는 확실히 늘었다. 어떤 기업들에겐 해외 진출 준비 기간과 비용이 대폭 줄어든 셈이다. 여기에 중간 마진도 없어진 만큼 소비자 가격도 낮출 수 있게 되었다. 500여년간 일어난 변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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