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탈리아 해운업

짱구는옷말려요 2021. 1. 8. 12:02

이탈리아 “배를 만들고 싶은데, 나무가 없어!”


 

 


‘도시화. 상업과 금융 발달. 은행 탄생. 복식 부기 도입. 보험업 발달.’



중근세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 정도의 선진 사회라면 당연히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었을 법하다. 그러나 현실은 국가적 쇠퇴였다. 이렇게 발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별 힘을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내용이 조금 부실했다. 제노바의 산조르조 은행은 1406년 문을 열고 세계 최초란 타이틀을 가져갔으나 이곳에서는 환전과 대출만 했다. 개인 예금을 기업에게 빌려주는 기능은 거의 없었다. 유럽 은행들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이 역할을 감당했다. 지금의 은행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이름뿐인 은행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해상보험업이 제일 먼저 시작되었으나 어떤 사고가 어느 만큼 일어나는지에 대한 예측 혹은 통계가 없었다. 보험의 핵심이 빠진 보험, 근대적인 의미에서는 의미가 없는 보험시스템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지중해의 특이한 삼림이었다. 지중해 인근 삼림은 페니키아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 이탈리아인, 무슬림 상인이 차례로 들어와 나무를 베었다. 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일단 훼손된 산림은 회복되지 않았다. 지중해 지역의 독특한 생태 특징이었다. (반면 발트해 연안은 나무가 곧잘 자랐다. 지금도 차만가지다.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의 주요 산업 중 하나는 임업이다.)

 



이탈리아의 해운업이 쇠퇴했다. 16세기 동안 대규모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었으나 이후로는 선체까지 외국에서 구입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영국이 석탄을 수출할 동안 발트해 지방에서는 대량의 목탄을 생산했으나 이탈리아는 이도 저도 불가능했다.

 

 



근대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 등의 북유럽 선박이 지중해로 들어왔다. 지중해의 물류권을 이들 나라가 차지했다. 이탈리아는 해운업이 쇠락한 뒤였고, 유럽이 활발하게 유럽 밖으로 나갈 때 이탈리아는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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