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도는 우리땅

짱구는옷말려요 2021. 1. 1. 18:46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평양에 4~5만 명이 군인들이 들이닥쳐 주둔할 터인데, 이들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해줄 수 없으니 모든 젊은 한국인 부녀자들은 서둘러 집에서 나와 산이나 먼 곳으로 피해있으라.”

 


러일전쟁 직전, 평양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본 영사가 저런 글을 써서 시내의 주요 대문에 방을 붙였다. 1945년 8월, 미군이 들어오기 전 여자들에게 ‘몸뻬’를 겹겹이 입으라고 한 지침이 연상된다.

 

 

 


젊은 여자들이 피신을 했다. 이들을 보호하려고 몇몇 남자들이 함께 길을 나섰다. 그렇게 일본군은 자국 관리들도 감당치 못할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한반도에 들어왔다.

 

 

 


1906년 4월30일, 선교사 노블 여사가 쓴 일기에는 일본 군인들의 행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난 가족, 좋은 땅을 빼앗긴 지주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한다. 한국인들이 항의하면 대답은 간단하다.

 


“군사적으로 필요하다.”

 

 

 


아예 무조건 일본 것이라고 우기기도 했던 모양이다.

 


‘한국인들이 항의라도 할라치면 일본인 관리들은 한국 땅은 일본인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1906년에 이미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외국인 선교사라 일본어에 서툴렀을 수도 있겠으나 하는 짓으로 보아 이런 발언이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외국인들도 일본인들에게 시달리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일본인은 선교사 소유의 땅에 문을 세우려고 했다. 땅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이 외국인들은 밤새 불침번을 세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본인들이 밤사이에 우리 구역 안의 땅을 차지하고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엾은 한국인들은 이런 일들을 계속 겪고 있으며,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집을 빼앗거나 밭에서 감자를 훔쳐 먹는 일본군도 있었다.

 


1906년 이미 그들은 한반도에 있는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행동했다. 그렇게 러일전쟁을 틈타 군사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고 함부로 빼앗았던 것 중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곳이 있다. 독도다. 그들의 식민지 정책이 부드럽고 온화했고, 한국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외국인의 일기를 정독해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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