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생 명대사

짱구는옷말려요 2020. 11. 26. 18:52

 

 

회사가 전쟁터라고?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야.”

 



‘미생’이라는 드라마에 나온 한 대목이다. ‘비유’다. 그럼에도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쟁터만큼의 치열함이 느껴질 때가 많은 까닭일 것이다. 회사와 전쟁터의 상관관계를 고찰할 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비유이기도 하다.







12세기, 영국에서는 인클로서 운동이 일었다. 양털로 모직물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데 재미를 붙인 지주들이 곡식을 일구던 땅을 초지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초반에는 농민들이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초지로 바뀌는 농토가 그다지 많지 않은 까닭이었다.



15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사이에 사정이 악화됐다. 정부에서 세금 수익을 늘리려고 지주들에게 인클로저 운동을 적극 권장한 결과였다. 이때가 2차 인클로저 운동 시기였다.

 



3차는 심각해졌다.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중엽 사이에 농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소수의 대지주들이 많은 땅을 확보했다. 자영농을 위한 영국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도시로 가도 사정은 그대로였다. 산업혁명이 시작돼 멀쩡하게 일하던 수공업자도 일자리를 잃고 있었다.



런던의 빈민가 화이트채플에는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정부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엄격한 법을 적용했다. 잡히면 ‘미국행’이었다. 어찌 보면 행운이었지만, 당시로는 형벌이었다.



1783년 이후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미국이 독립을 해버린 까닭이었다. 실직자와 죄수를 ‘개척자’로 포장해 인력 수출을 하던 전통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렸다.







회사 밖으로 몰려나 나름 자영업(개척자)에도 정착하지 못한 이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전쟁’이었다. 19세기 영국군에 지원한 이의 80%가 실직자였다. 월트레드 블러트(1840~1922)라는 작가는 이렇게 썼다.



‘영군군에 입대하는 병사들은 살인범과 강도, 창녀와 폭력배들이 들끓는 빈민가에서 온 가장 저질스럽고 추악한 자들이다. 그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약탈과 승진뿐이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도덕심이나 명예도 없다.’

 



1840년 아편전쟁이 벌어졌다. 이들은 뒷골목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어김없이 발휘했다. 광주에서는 꼭지가 돌아버린 청나라 사람들이 총구 앞에 농기구를 들고 봉기하기도 했다.



1857년에도 빈민가 청년은 어김없이 본색을 드러냈다.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였다. 투항한 사람을 포구에 묶은 체 대포를 쏘기도 했다.

 



살벌함의 정도야 다르겠으나, 기업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회사 내의 투쟁과 기업들의 살아남으려는 노력이 전쟁을 연상시킬 만큼 살벌한지 납득이 된다. 회사 밖으로 밀려나거나 기업이라는 울타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결국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어떤 나라는 너무 가난해서 희망직업 1순위가 ‘용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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