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9번째 사가독서(賜暇讀書)편지2015.12.16(수)
세 개의 섬
# 갈망의 섬
“어, 없네?”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의 탐사선이 퀸즐랜드 주 동쪽으로 1,100km쯤 되는 해상으로 나갔다. 샌디 섬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섬은 거기에 없었다.
1876년부터 거기에 섬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없는 섬이 어떻게 선원들에게 보였을까. 이 사실을 보도한 <뉴욕 타임즈>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라 멀리 길고 검은 표면, 또는 밝고 노란 표면이 보이면 뱃사람들은 그게 모래톱이라는 인상을 갖기가 쉽고 이안류를 암초로 오해하기 쉽다.’
심지어 수면에 떠 있는 고래등을 섬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착각의 뿌리는 갈망이다. 워낙 육지를 고대하기 때문이 비슷한 것이 보이면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육지’에 대한 갈망이 있다. ‘샌디 섬’이 그토록 오랫동안 ‘존재’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사람들의 ‘갈망’이 빚어낸 거대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갈망은 바다 위에만 존재하지도, 또 섬에 대해서만 적용되지도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육지’를 갈망한다.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집단적인 것이든, 섬은 어디에나 있다.
# 권력의 섬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 넓은 잔디 광장, 상징적인 건축물들. 그러나 텅 빈 도시. 인적이 끊어진 곳.’
중국의 어얼둬쓰(鄂爾多斯)에 있는 캉바시 신구에 대한 묘사다. 유명한 유령도시다.
도시의 탄생 배경에는 지방 도시의 욕심이 있었다. 어얼둬쓰는 시골 마을에 불과했지만 중국 경제가 발달하면서 소득이 급증했다. 2000년에 25억 달러에 못 미치던 GDP가 불과 9년 만에 410억 달러를 넘겼다. 돈이 돌기 시작하자 지방 정부는 도시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꾸고 싶었다.
자신들의 위세를 외부(혹은 세계)에 과시하고 싶었던 그들은 인구 밀도 1제곱킬로미터당 18명인 지역에 인구 30만이 들어갈 도시를 건설했다. - 건설 때문에 이주한 인구는 3만, 가구 수는 400이었다.
권력은 한 번 휘두르면 요술 방망이처럼 어마무시한 무엇을 탄생시킬 수 있지만, 실정과 민심을 무시하면 속이 텅 빈다. 껍데기만 그럴싸한 무엇이 되는 것이다. 권력의 허구, 혹은 권력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 상징물 치고는 너무 비싸지만 나름 의미는 있다.
짧은글 긴여운
욕망의 섬
“도로를 따라 1.5킬로미터쯤 더 가면 호그스 백이 나옵니다. 거기로 가세요.
차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는 영국인 커플에게 경찰관이 친절하게 설명한 내용이다.
호그스 백은 개 산책(dogging)으로 유명하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개 산책 장소’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개 산책만 하지 않는다. 영국 경찰은 ‘공개 성행위 다발 장소’로 부른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풍경에 무언가 욕망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을지 모른다. (리즈 대학의 교수인 데이비드 벨David Bell이라는 지리학자는 1994년 지리와 성性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씹히는 지리학Fucking Geography’이었다.)
사실 ‘개 산책 시키러 나간다’(Just taking the dog for walk)는 일종의 은어다. 적당히 둘러대고 밖으로 나와 낯선 사람과 밀회를 즐긴다는 뜻이다.
오늘도 수많은 남녀들이 개 한 마리를 끌고 욕망의 섬을 산책할 것이다. 혹은 빈손으로 산책로를 어슬렁거리거나.
참고>
앨러스테어 보네트, 박중서 옮김, <장소의 재발견>, 책읽는수요일, 2015, 21쪽, 173쪽, 3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