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이야기
신(神)들이 물으시기를 “화장실이 어디냐?”
“신께서 돌아오셨다!”
제국에는 오랜 전설이 있었다. 신화의 시대, 전쟁의 신과 평화의 신이 격돌했다. 농경과 평화를 맡고 있던 신이 패배했다. 신은 제국을 떠나 바다로 나가면서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제국의 사람들에게 ‘그들’은 신처럼 비쳤다. 신이 약속한 시간과 바로 그 장소에 발을 디딘 그들, 차림새로 예사롭지 않았다. 말을 타고 나타난 ‘신’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제국의 황제도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신’들의 무리가 본색을 드러낸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황제를 처형하고 제국을 무너뜨렸다. 신들의 정체는 침략자였다. 결국 제국의 백성과 고관들은 침략자들을 열렬히 환영했던 것이었다.
이웃한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제국은 힘든 상황이었다. 형제가 황제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다. 형이 아버지에게 권좌를 물려받았지만 동생이 반기를 들었다. 결국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신께서 오셨다!”
바로 그 즈음 그들이 왔다. 제국의 사람들은 그들을 최고의 신이 보낸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정체를 드러낸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200명도 안 되는 그들이었지만 제국 백성들의 두려움 덕분에 손쉽게 황제를 제압했다. 황제는 수 천 명의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1/10도 안 되는 침략자들에게 당했다. 마음 밑에 깔려있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침략자들은 황제의 몸값을 요구했다가 엄청난 양의 황금을 받은 뒤 황제를 죽였다. 신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신들’이었다. 이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믿는 최고의 신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그들의 신은 “수염을 기른 이방인들에게 제국이 멸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 예언이 성취된 거였다.
허망하게 무너진 두 제국은 각각 아스테카와 잉카 문명이었다. 이들은 침략자들은 신, 혹은 신의 대리자로 혼동해 결전 태세를 갖추지 못했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신들과 그를 따르는 믿음은 제국을 움직이는 가장 거대한 권력이었을 것이다. 침략자만 없었다면 신들은 그들에게 안정을 주었을 것이다. 물론 인신 제물 등 폭력적인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던 신은 문명을 받치는 가장 큰 기둥 중의 하나였다.
사실과 동떨어진 거짓된 믿음 혹은 편견이나 오해가 불러오는 비극에 대한 우화처럼 들린다. 때로 신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터무니없이 믿다가 사고를 당하는 이들도 있지만, 크든 작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해서 실수를 하거나 불행을 겪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마지막으로 궁금증 하나. ‘신’들이 “화장실이 어디있느냐?”고 물었을 때 제국의 백성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새로운 진리를 알게 된 감격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혹은 신의 몸에서는 인간의 그것과 다른 신비로운 무엇이 나온다고 기대를 했을 수도 있다. 신들의 똥을 제일 먼저 본 제국인의 표정이 궁금하다.
참고>
신정환, 전용갑, <두 개의 스페인>,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