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선의 정체성

짱구는옷말려요 2020. 4. 10. 22:07

조선의 정체성


다시 태어난 조선






“요동을 건너면 필부(匹夫)가 되는 것입니다.”- 승지 신잡(1541~1604)







백성은 분노했고 왕은 겁에 질렸다. 첫 단추를 잘못 뀄다. 백성에게 거짓말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도 백성의 분노는 피할 수 없었다.







몽진은 충주에서의 패배 소식이 들려온 직후에 결정됐다. 6월9일 임금을 태운 가마가 성문을 빠져나가기 직전까지 백성들에겐 이 사실을 비밀에 붙였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선조실록>은 그날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모두 울어 옷소매가 다 젖었으며 부로들도 일시에 목놓아 통곡하니 온 성안이 오열했다.”






선조는 교서를 통해 조정이 도성을 지킬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감격적인 교서 낭독 이후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얼마나 화가 났을까. 생명마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버려진 채, 왕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작전상의 기밀’이었다. 작전이 알려지면 왕이 생포될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백성이 피란을 시작하면 혼란이 극심해질 것이며, 방어군의 사기 또한 떨어질 것이었다. 유성룡은 조정은 결코 도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켰고 방어 전략을 짰다. (며칠 만에 도성은 함락되었다.)






왕은 트라우마에 빠졌다. 도성을 빠져나가기 전(4일), 그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동시에 사대가들을 원망하는 교서를 내렸다.



“시세가 여기에 이르게 했으니 그 죄는 실상 나에게서 말미암은 것이다. 얼굴을 들면 부끄러울 뿐이다... 오직 너희 사서(士庶)는 네 아비와 네 할아비가 나라의 후한 은혜에 젖었는데 하루아침에 난리를 당하자 이내 나를 버리고자 하니, 나는 너희를 허물하지 않으나 너희가 차마 나를 버린단 말이냐.”







명나라 장군 조승훈이 요동군을 이끌고 들어와 패배했다. 양력으로 9월 초순의 일이었다. 왕은 겁에 질렸다. 명나라 땅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명나라에서 탐탁잖게 여겼다. 신하들도 말렸다. 강력한 ‘경고’도 튀어나왔다.







“전하께서는 압록강을 건너간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영원히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 삼도 도체찰사 정철



“한번 압록강을 건너면 회복할 희망이 영원히 끊어질 것입니다.” - 좌의정 윤두수



“요동을 건너면 필부(匹夫)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가 우리 땅에 머물러 계신다면 거의 일 품의 희망이라도 있지만 일단 요통으로 건너가면 통역하는 무리도 반드시 복종하지 않을 것은 물론, 곳곳의 의병들도 모두 믿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 승지 신잡







필부가 된다는 말은 맹자의 한 구절을 연상시킨다. 왕이 왕답지 못하면 평범한 사내에 불과해진다. 왕이 된 자에게는 모욕적이면서도 끔찍한 경고다.







민심을 잡아야 했다. 모든 백성이 한 사람처럼 똘똘 뭉쳐야 국난 극복이 가능할 것이었다. 이때 선조는 급진적인 정책을 펼쳤다. 일반 백성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한글을 사용하게 했다. 처음에는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한글로 작성했다.







한글은 조선을 하나로 만들었다. 타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이기도 했고, 왕부터 백성까지 하나로 아우르는 문자였다. 일본과 명나라가 조선을 배제한 채 강화협상에 나서면서 더더욱 왕과 백성은 공동운명체가 되어갔다. 이 공동운명체의 정체성은 한글이라는 독특한 문자로 대변될 것이었다.



이런 과감한 결정 이전에 의병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의병장은 평민이었다. 위급한 순간에 평민이 평민을 그러모아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선 것이었다. 왕과 신하가 명하고 백성이 따르던 수직적인 구조의 파괴였다.







의병장들은 평화로웠던 200년 동안 조정이 백성을 먹여 살리고 키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왕과 나라가 무너지고 있었고, 백성은 나라와 왕을 구해야 했다. 의병은 단순한 충심을 넘어 ‘왕’이라는 구성원이 속한 공동체(나라)를 위해 일어선 의로운 군사들이었다. 의병의 핵심 정서는 충성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희생이었다. 이는 논리적으로 왕과 조정의 실책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동적인 비난이 아니라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지와 희생정신이었다.



이제 왕과 백성은 공동 운명체였다. (백성이 그러한 것처럼 왕도 공동체의 일부였다.) 그렇다면 동일한 언어로 서로의 마음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조선인의 정체성이 확인되었던 거였다.



참고>

김자현, <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윌리엄 하부시, 김지수 편집, 주채영 옮김, 너머북스, 2019년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인 노예  (0) 2020.04.14
일본의 역사  (0) 2020.04.14
한글의 위대함  (0) 2020.04.02
고경명 장군  (0) 2020.03.27
프로듀스 x 101 순위조작  (0) 2020.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