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경명 장군

짱구는옷말려요 2020. 3. 27. 23:32

고경명 장군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주저하지 않았다






나라와 나라의 군대가 무너졌다. 그때, 백성을 향해 ‘일어나라’고 촉구하는 글이 쓰였다.



‘풀로 엮은 옷을 입고 꿈틀거리는 섬 오랑캐가 얼마나 추잡한 종자인데, 그자들이 우리 땅을 훔쳐 차지하고 우리 백성을 죽이고 욕보이는 대로 내버려만 두고, 그자들을 몰아내고 목 베어 죽일 방법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김성일이 돌린 초유문의 일부다. 초유문에서 김성일은 백성들이 일어나 왜적들과 싸우기를 촉구했다. 특정인을 지목하진 않았어도 말을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강력한 명령이었다.







문장가이자 의병장으로 일어선 고경명도 격문을 돌렸다. 그의 통문에는 의병의 명분을 설명하는 문장들이 ‘충분히’ 담겨 있었다.







‘우리 여러 군의 수재들과 여러 길의 사민들의 충성이 어찌 임금을 잊었겠는가. 의리상 마땅히 나라를 위해 죽어야 할 것이다. 혹은 병기와 의장으로 도와주고 혹은 양식으로 구제해주며, 혹은 말을 달려 군사의 행렬 앞을 가고 혹은 쟁기를 놓고 밭에서 분기하여 힘을 미칠만한 것을 헤아려 오직 의로운 데로 돌아가 임금을 고난으로부터 막아낼 수 있다면, 나는 그대들과 함께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 고유후, <정기록>, 1599년







고경명은 지역의 리더였겠지만 어찌 되었든 민간인 신분이었다. 민간인이 합법적으로 백성들에게 공식적 성격이 강한 공문을 돌렸던 것이다. 이는 중요한 변화였다. 모든 결정과 집행의 중심이던 ‘국가’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논의에서 ‘백성’은 수동적인 존재였다. 왕이 백성을 두려워하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돌봄을 받는 대상에 대한 생각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백성은 스스로의 동력을 가지고 일어섰다. 수동적 존재로서의 백성은 간 곳 없이 사라졌다.

조정에서도 이런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왕과 그의 군대가 치르는 전쟁이 아니라 조선에 속한 구성원 모두가 당연한 도덕적 의무감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 전쟁이라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전쟁 초기 왕과 신하들이 저질렀던 실수가 희미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어쨌거나 백성이 일어섰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전쟁 전이나 후나 상투를 틀고 유학 서적을 읽는 것은 비슷했으나 이면은 사뭇 변화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일어섰던 의병들의 정체성은 고경명의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아무도 주저하지 않았다.”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백성이 탄생하고 있었다.



참고>

김자현, <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윌리엄 하부시, 김지수 편집, 주채영 옮김, 너머북스,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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