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글의 위대함

짱구는옷말려요 2020. 4. 2. 22:24

한글의 위대함



나랏말싸미 (다행히) 듕귁에 달아






한글은 탄생 후 여러 곡절을 겪었다. 연산군은 폭정을 비난하는 글이 한글로 작성된 것을 알고는 한글 금지령을 내렸다.







한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이러했다.



- 한자는 중앙의 것이자 공공적, 남성적. 한글은 지방적, 사적, 여성적.



한글이 역사의 무대에서 한문 못잖게 중요한 역할을 한 계기는 전쟁이었다. 임진왜란 시기 한글은 임금의 말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자로 작성한 교지를 한국어 발음으로 낭독하기는 했지만, 임금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섰을 것이나, 상황은 급박했다. 처음부터 한글로 작성한 교지가 쓰여졌다. 한글이 공문서에 한글과 동일한 위상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한글의 역할은 ‘타자 배제’였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한글을 몰랐다. 읽을 줄 안다 하더라도 조선의 언어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글을 읽는 사람은 ‘조선인’이었다. 동일한 언어와 글자를 쓰는 무리라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민족’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만주 족의 침략으로 ‘중국이 망한’ 뒤 유교 문명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한 뒤로 한자가 다시 중심 언어로 복귀하는 듯했으나 영조와 정조 시기에 다시 한글이 문서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전쟁이 남긴 강렬한 소통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에도 한글의 위상은 시민사회와 함께 성장했다. 일제강점기부터 1986까지 ‘운동’과 ‘시위’의 중심은 학생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참가했어도 주도 세력은 이들이었다. 이후 중심 축은 ‘시민’으로 옮겨왔다. 1988년 한자를 없앤 한글 전용 신문이 등장하면서 일어난 변화가 아니었을까. 언어의 장벽이 완벽하게 허물어진 뒤 모든 이들이 공론의 장에 스스럼없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참고>

김자현, <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윌리엄 하부시, 김지수 편집, 주채영 옮김, 너머북스,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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