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르네상스 복고

짱구는옷말려요 2019. 11. 29. 01:24

르네상스 복고



‘르네상스’가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르네상스’라고 하면 새로운 것, 변화를 떠올린다.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놓고 보면 복고에 가깝다.



1506년 어느 농부가 ‘라오콘 군상’을 발견했다. 농부는 이 조각상을 미켈란젤로에게 보여주었다. 미켈란젤로가 밝힌 사연은 그랬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심했다. ‘라오콘 군상’이 사실은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이고, 발견과 제보는 그의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미켈란젤로가 추구한 예술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복고적이었다.



르네상스는 복고를 통한 변화, 개혁을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들이 많았다. 보카치오는 로마시대에 쓰인 지리학 사전인 ‘산 숲 샘 호수 강 늪 또는 습지와 바다의 이름에 대하여’란 책을 들고 답사 여행을 하면서 책의 내용과 다른 풍경이 나오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나의 눈을 믿기보다는 고대 작가들의 권위를 믿고 싶다.”



보카치오가 르네상스의 시대의 분위기를 알려주고 있긴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당신은 키케로식으로 표현하지 않네요.”



이탈리아 학자 폴리지아오는 이 지적을 받고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키케로가 아니다. 나는 내 생각대로 나를 표현할 뿐이다.”



단순한 모방을 넘어서 스스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사고하는 습관이 생겨나면서 드디어 르네상스는 변화의 기운으로 상승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베살리우스가 대표적이다.







한 가지 더 있다. 르네상스는 거대한 변화를 만들었다. 시작은 독특한 인물 한두 명이 주도할 수 있어도 이들이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결국 생각과 의지가 모여야 한다. - 사실 고대의 학문과 문화는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다. 르네상스가 가져온 전반적인 변화는 복고에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진다.



핵심은 ‘함께’였다. 복고든, 복도에 바탕을 둔 새로움이든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큰 폭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인쇄술, 상업과 시민계급 형성, 학문과 문화의 향유자가 증가한 것 등이 르네상스가 세계적 현상으로 발전한 요인이었다.







이 시대는 인쇄술 이상의 혁명이 일어났다. 과거 어느 때보다 생각과 말을 전하는 수단이 많아졌고 또 쉬워졌다. 거기다 르네상스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동참자’(어떤 이슈든)가 확보되기 일쑤다. 복고, 집단 같은 말이 낡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두 요소는 과거의 변혁을 이끈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참고>

정기문,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푸른역사, 2019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편적 가치  (0) 2019.12.01
군위 의성땅  (0) 2019.12.01
도스토옙프스키 명언  (0) 2019.11.27
아이슈타인 아이큐  (0) 2019.11.26
사이비 과학  (0) 2019.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