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도스토옙프스키 명언

짱구는옷말려요 2019. 11. 27. 19:53

도스토옙프스키 명언


도스토옙프스키, 두 번의 사형선고







도스토옙프스키는 두 번의 사형선고를 받았다. 첫 번째는 그 유명한 정치 사건이었다. 그는 황제의 전제정치에 반대하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가 1849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다. 그는 황제의 사면으로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다. 4년의 중노동을 겪으면서 이곳에서 처음으로 뇌전증(간질)을 겪었다. 어찌 되었던 목숨을 구했다.



그와 관련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 혹독한 경험 뒤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서 부지런히 살기만 했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와 10년쯤 뒤 그는 다시 한번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번에는 재정적인 부분이었다. 빚이 너무 많았다. 그의 낭비벽은 그나 남긴 작품만큼이나 유명하다.



그는 15살에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한 뒤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병학교로 갔다. 이때부터 그의 돈에 대한 집착이 노골화됐다.. 그는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기 위해 아버지에게 편지를 부쳤다. 무척 예의발랐지만, 어떻게 부탁하든 결론은 부담이었다.



‘아버지께 이토록 중압감을 드리는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그는 19세에 공병학교 예과 과정을 마친 후 장교로 임명됐다. 그 뒤로 본격적인 소비생활을 시작했다. 오페라 연주회, 연극과 발레를 보러 다녔다. 늘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심지어 외상으로 변변찮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돈이 생기면 내기 당구를 즐겼다. 낭비벽과 상관없이 1840년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작품으로 그는 주목을 받았어도, 돈이 너무 많이 필요했던 것이 문제였다.







1865년 그는 재정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빚이 너무 많았다. 그때 출판업자가 접근했다. 그는 이제까지 발표한 작품을 전집으로 낼 권리와 1년 안에 장편소설 한편을 써주면 3,000루블을 주겠다고 했다. 장편을 못 낼 경우 향후 9년 동안 그가 쓴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가져가겠다는 단서도 달았다. 물론 인세도 없었다.



어느덧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마감을 몇 주 앞두고도 그는 빈손이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찰나, 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그것’을 소재로 작품을 쓰자는 생각이 스친 것이었다. 마침 친구가 그를 도왔다. 그는 속기사를 구해줬고, 몇 주 만에 장편을 완성했다.



그는 ‘그것’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를 거의 완벽하게 묘사했다. 현재까지도 가장 훌륭한 샘플이라고 말하는 정신과 의사가 많다. 이유는 간단했다. 본인이 ‘그것’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의 두 번째 사형선고에 가장 크게 기여했을 그것은 ‘도박’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생애 중 10년 동안 강박적인 도박에 빠졌다. 지갑과 인간관계 모두 거덜이 났다.







그가 본격적으로 도박을 접한 것은 1862년이었다. 그는 아내와 헤어진 후 독일의 카지노에서 위안을 얻었다. 첫 도박(룰렛)에서 1만1,000프랑을 딴 그는 도박의 원리를 꿰찼다는 착각에 빠졌다.



강박적 도박의 원인은 불안, 우울, 무력감 혹은 죄책감이다. 그의 정신세계에서 죄책감은 두드러진 주제였다. 그의 죄책감은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일까.



학자들은 두 가지로 본다. 첫째는 1928년에 작고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는 돈을 요구하는 편지를 받은 두어 주 후에 노상에서 작고했다. 의사는 뇌졸중 진단을 내렸으나, 가족들은 농노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했다.



혹자(UCLA 의대의 로즌솔)는 그 뿌리를 출생에서 찾는다. 그의 어머니는 임신에서 기도 감염을 겪었다. 이 감염이 결핵의 원인이 되었다.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연일지도 모르나 그의 도박은 첫 아내였던 마리야가 결핵으로 죽어가던 무렵에 시작되었다. 로즌솔은 이런 경우 도박은 “커다란 상실감과 특히 죄책감에 대한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도스토옙프스키는 도박을 소재로 한 글을 쓸 때 속기를 해주었던 25세 연하의 속기사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의 도박을 이해했다.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의지박약’이 아니고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열정임을, 성격이 강인한 사람조차 맞서 싸울 수 없는 하나의 자연력임을 깨달았다. 그러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남편의 도박벽을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도박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도박에 빠져든 원인을 깨달으면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도스토옙프스키는 자신의 죄책감을 인식하지 못해서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참고>

클로디아 캘브, <앤디 위홀은 저장강박증이었다>, 김석희 옮김, 모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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