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있는 이야기

일본 전설의 1군

짱구는옷말려요 2024. 3. 3. 23:06

일본 전설의 1군

 

 

 

전설의 1

675. 당은 신라를 옥죄었다. 2월에 칠중성을 공격해 그해에 여러 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투를 치렀다. 신라는 임진강 방어선을 구축했고, 당군을 이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당군이 주목한 곳은 매소성이었다. 가장 취약한 방어선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매소성에서 18번의 접전이 펼쳐졌다. 당군은 그야말로 기를 쓰고 달려들었고 신라는 최선을 다해 방어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군 20만이 이끌고 매소성에 진을 쳤고, 신라군이 이를 공격해 적을 도망하게 하고 전마 30,380필과 그에 필적하는 병기를 얻었다.

 

 

매소성 전투는 나당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 전투의 패배로 당군은 결국 철군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당나라에 변고가 있었다. 토번(티벳)의 발흥이었다. 중국학자 바이건싱은 다른 의견을 냈다. , 6759월에 발생한 매소성 전투는 당군이 철수하면서 벌인 전투라는 것. 신라군이 격파한 것은 당의 주력 부대가 아닌 후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당은 급히 철수해 676년 윤3월 토번과 전투를 치렀다는 해석이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우선 굳이 크게 싸울 필요가 없는 전투에서 당군의 피해가 너무 컸다는 점이었다. 또한 주력 병력으로 칠중성과 석현성을 공격했다. 더불어 철수 방향과 전혀 다른 아달성ㆍ적목성으로도 진격했다. 그쪽은 강원도 방향이었다. 당군은 아달성에서 18차례에 걸쳐 악착같은 접전을 펼치며 6,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철수하는 부대의 태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당은 676년 윤3월 공격에 대한 사전 공격이 없었다. ‘계획이 없는 만큼 그토록 공을 들이고 있는 한반도의 군을 갑자기 철군시킬 이유가 없었다.

 

 

사료에 의하면 토번이 서북 변경을 공격해오자 원정군 파견이 아니라 수비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의 군사 전략 중심이 동북(한반도)에서 서북으로 바뀌는 시기는 676년 윤3월 이후였다. 그전까지는 한반도 점령이 제1 목표였으나, 토번이 당의 국경을 넘어 들어오자 수도를 지켜야 할 상황에 처한 까닭이었다.

매소성 전투는 당의 정규군의 신라를 뒤엎으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벌인 한판 승부였다. 철수전이 아니었다.

패배에 대한 변명을 듣고 있자면 일본의 그 유명한 전설의 1설이 연상된다.

참고>

이상훈, <나당전쟁 건곤일척의 승부>, 역사산책,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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