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씨 족보에 권씨는 10% 양반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당연히 특권층이었고, 고려 후기로 가면서 이 특권을 획득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조상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열된 호적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호적에 변화가 찾아왔다. 조선 건국 직후까지만 해도 그대로 가다가 이후로 양반 부부 각각의 사조(四祖ㆍ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까지만 기록하도록 했다. 이에 ‘뼈대’를 보여주고 싶었던 양반들은 불만을 가졌다. 15세기 후반, 민간 족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안동권씨성화보였다. 이 속에는 아버지 혈통과 딸들(사위)까지 포함됐다. 범위가 방대해서 심지어 권씨족보였지만, 족보에 담긴 ‘권씨’ 성 남자는 10%에 불과했다. 성씨가 수백 개에 이르렀다.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져 내려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