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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아름다움

짱구는옷말려요 2019. 10. 7. 00:14

내면의 아름다움





미스코리아를 싫어한 남자


남자는 예쁜 여자면 다 좋아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조선의 임금 선조도 미모를 마다한 임금이었다. 그는 16세에 왕위에 오른 뒤 18세에 아내를 얻었다. 현령 박응순의 딸과 1569 년 11월 1일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선조는 아내(의인왕후)에게 잘 들어가지 않았다. 원래부터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소주방(궁중 요리원)에서 일하던 여인과 사귀는 사이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가 (임금이) 후궁을 가까이 하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러 비를 예쁜 여자로 골랐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대단한 미인이었던 듯하다. ‘미스코리아’를 멀리하는 임금을 얼마나 �! �상하게 생각했을까.
얼마 후 의인왕후 박 씨가 임신이 불가능한 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정실에서 먼저 아들을 얻게 하겠다는 인순왕후의 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





선조는 결국 소주방 나인이었던 김씨와의 러브스토리를 완성했다. 김씨는 후궁으로 인정받은 후 연이어 아들을 낳았다. 광해군도 그가 낳은 아들이었다. 1575년 광해군을 낳기까지 그는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2년 후 산후 후유증으로 이생을 마감했다. !
선조는 왜 좋은 가문의 미스코리아급 아내를 마다하고 식당에서 일하는 소녀를 사랑했을까. 어쩌면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서자 출신으로 왕위에 올랐는데(평생 콤플렉스로 작용했다), 선왕인 명종은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언급한 적이 없었다. 명종은 죽기 직전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주위에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선조를 왕위에 올린 건 그의 아내였던 인순왕후였다.






명종이 살아있던 시절 하성군이었던 선조를 세자로 책봉하려 한 적이 있었다. 명종이 1565년 9월 명종은 많이 아팠다. 병세가 악화했을 즈음 인순왕후와 신하들이 하성군을 세자로 세웠다. 명종이 그대로 운명했다면 선조는 순탄하게 왕이 되었을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명종이 깨어났다. 명종은 하성군이 세자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아내와 신하들의 결정을 취소해버린 거였다.
죽기 전에도 확실하게 하성군(선조)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선조에게 서자라는 콤플렉스에 선대 임금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또 다른 심리적 압박을 남겼을 것이다.





소주방 나인 김씨는 그런 선조의 마음을 헤아리! 지 않았을까. 으리으리한 가문 출신인 정식 아내는 아무래도 불편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왕으로 만든 의인왕후가 그러하듯이 박씨 역시 단순한 집사람으로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정치적 논리가 떠올랐을 것� ��다.
그런 자부심 약한 왕의 입장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 편한 김 씨가 딱 좋지 않았을까.
여자는 외모가 다가 아니다. 이런저런 외부적 조건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정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연’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한다.
참고>
최일생, <히포크라테스 조선 왕비를 만나다&! gt;, 메디안북, 2015, 2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