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경비
라오스 여행경비
2. ‘체력은 국력’의 의미는 밥심
과거 우리 조상들의 밥그릇은 지금의 4~5배정도 될 만큼 많이 먹었다. 일을 많이 하는 만큼 그만큼 밥심으로 견뎌온 것이 아닐까? 이곳의 주식인 쌀국수 한그릇은 두 기자에게는 한입 간식거리도 되지 않았다. ‘요정도 양을 먹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저녁을 먹을 때는 매콩강녁에 있는 야외식당에 매일 찾았다. 화로에 불을 피워 샤브샤브를 먹는 곳였다.
2명이 오면 보통 2~3접시를 시켜 먹는 것을 봤다. 괜시리 장난을 치고 싶었다. 보란 듯 14접시 이상 시켜 접시를 높이 쌓았다. 화로의 화력을 높이기 위해 숯도 많이 넣고 나무젓가락까지 넣었다. 화력이 높아지면서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틀째부터는 주인도 대식가인 것을 알아보고 친절하게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실컷 먹었지만 한국돈으로 1만2,000원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의 지역감정은 명함도 못내미는 인종차별
아침마다 인근에 있는 쇼핑몰 '딸랏사오'로 찾아갔다. 도보로 15분정도 걸리는 이곳은 태국으로 가는 국경버스를 타는 곳이자 대형 쇼핑몰이다. 두 기자가 찾은 이유는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돈 5,000원이면 미용실에서 30분간 머리를 감겨주고 세안까지 해준다. 지난해까지 보이던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새로운 이들이 맞이한다. 첫눈에 ‘외국인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지’라는 표정이다. 안면이 있던 주인과 인사를 하니 그제서야 경계를 풀고 웃으며 맞이한다. 번역기를 통해 말을 해보니 이들은 라오스 소수민족의 일종인 ‘몽족’이었다.
몽족은 라오스는 소수민족이다. 몽족은 베트남 전쟁때 미국 CIA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라오스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다. 전쟁 후 미국도 몽족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바람에 오갈데 없는 민족으로 남아있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몽족은 라오스에서 차별을 받거나 직업제한까지 받고 있다. 심지어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엔 출신에게 몽족이냐고 물으면 대번에 안색이 변할만큼 인종차별이 심하다. 인구 700여만명에 소수민족만 40여개가 넘는다. 표준어는 수도인 비엔티엔과 방비엥이 기준이지만 소수민족언어와 방언을 포함하면 글과 말이 조금씩 다른 것을 보면 폐쇠적이고 차별이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필자의 머리를 감겨주는 자그마한 체구의 아가씨는 19살에 ‘밧’이라고 했다. 유달리 큰 면적의 얼굴과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 안스러워 3일째 보던 날 어렵게 식사약속을 잡았다. 장소는 며칠 째 샤브샤브를 먹은 곳이었다. 아가씨들과 자리에 앉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웃으며 맞이하면서 반찬과 젓가락을 주던 모습은 없고 본척 만척이었다.
기본적인 것도 차려주지 않았다.주인이 몽족 아가씨들에게 손가락을 가르키며 가져다 먹으라는 투로 말했다. 차별을 느낀 탓인지 같이 간 아가씨들은 불편해 하는 내색이 역력했다. 먹는둥 마는둥 하며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하는 이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o be continued............